과학자

Niels Bohr 닐스보어

르완다 2023. 9. 7. 15:35

닐스보어 생애

닐스 헨리크 데이비드 보어는 1885년 10월 7일날 넴카트에서 태어나 1962년 11월 18일 사망하였다. 보어는 물리학자이며 철학자였으며 연구자였다. 원자모형을 개발한 보어는 전자의 에너지 준위를 이산수학을 통해 분석하였으며 원자 핵 주위를 안정상태로 궤도운동하는 준위들을 발견하고 계산해 내었다. 또한 이 준위 사이에는 전자가 존재할 수 없으며 다른 준위로 이동할 때에는 점프를 한다는 방법을 제안했다. 나중에는 보어모델에서 더 발전된 모델로 대체되었지만 당시 보어모델은 획기적이였으며 양자역학에 커다란 흐름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상보성 원리를 생각하게 했으며, 전자인 입자들도 파동성을 가지고 있다는 관찰 결과를 나타낼 수 있었다. 또한 이는 과학과 철학 양쪽에서 큰 영향을 미치는 계기가 되었따.

 

보어는 물리학 연구소를 1920년에 코팬하겐 대학에서 설립하였으며 이는 닐스보어 연구소로 명성이 자자했다. 또한 이 연구소에서 조지 드 헤브시, 하에젠베르크, 클라인, 한스 클래머스 등 유명한 물리학자들을 데려왔으며 이들은 협력하여 연구소에서 다양한 연구를 해왔다. 이 코펜하겐 대학에서 발견한 다양한 원소들이 있는데 그 중 코펜하겐의 어원(라틴어)를 가져와 하프늄이라고 명명된 원소가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며 이는 지르코늄과 비슷한 원소라고 생각하였다. 후에 이 원소를 보흐리움의 이름을 따서 지어지게 되었다.

 

1930년쯔음 보어는 나치즘으로부터 난민들을 지원하게 되었다. 그는 핵무기를 개발하는 연구소의 책임자가 되었으며 하이젠 베르크와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이 시기는 덴마크가 독일에 점령된 이후 였다. 또한 보어는 1943년 9월에 독일에 채포가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스웨덴으로 망명하였다. 스웨덴에서 영국으로 가서 핵무기 개발에 참여하였으며 맨파튼 프로그램의 영국 소속의 일원이 되어 매진하였다. 이에 보어는 원자력과 관련하여 국제적인 협력을 원하였다. 또한 덴마크 원자력개발 프로그램의 일원으로서 여러 연구소를 설립하였으며 북유럽지역의 이론물리학 연구소의 회장이 1957네 되었다.

 

닐스 보어의 삶

보어의 풀네임은 닐스 헨리크 데이비드 보어이며, 보어는 덴마크 코펜하겐의 출신으로 1885년 10월 7일날이 생일이다. 코펜하겐대학교의 생리학 교수와 엘렌 아들러의 와이프 사이에서 3자녀 중 2째로 태어났다. 아네는 은행가 출신이다. 보어는 제니라는 누나와 해럴드라는 동생이 있었으며 제니는 선생님이 되었고, 해럴드는 런던올림픽에서 축구 국가대표로 선수출신이며 덴마크의 수학자로서 유명하다. 보어 또한 축구를 엄청 좋아했다. 이에 코펜하겐의 아카데미 풋볼 클럽에서 몇경기를 뛰며 이에 감독이 골키퍼로 닐스를 선정하였을 정도이다.

 

초년

보어는 Gammelholm Latin School에서 초등교육을 받았다. 또한 1903년에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코펜하겐 대학교에 입학하여 전공은 물리학으로서 학부생활을 이어나갔다. 물리학을 배울때 교수는 크리스천센 교수였다. 또한 천문학과 수학을 틸 교수로부터 배웠으며 아버지의 동료인 해럴드 호프팅 교수에게는 철학을 배웠다. 

 

1905년에 왕립과학 아카데미가 열린 덴마크에서 과학자 레일리에 의해 표면장력을 측정하는 실험을 선보였다. 이곳에서 진동수와 주파수를 이용하여 표면장력을 측정하는 것이 함께 있었다. 이때 보어는 아버지의 코팬하겐 대학교의 연구실을 활용하여 작은 실험을 하였지만 아버지는 생물학관련 실험실 밖에 없어 심도있는 물리학 실험을 하지는 못하였다. 보어가 하려고 하는 실험은 타원모양의 유리관을 필요로 하는 실험이였으며, 이 시험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다. 보어는 물의 점성을 이용하여 공명진폭을 통하여 레일리의 이론과 방법을 모두 사용하여 실험을 진행해 왔다. 이에 보어는 수상을 하게 된다. 후 왕립협회의 개량판 논문을 제출하여 철학적, 과학적 발전에 기여하였다.

 

보어의 동생인 해럴드는 보어의 형제자매중 처음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하게 된다. 이는 1909년 4월이였으며 학위는 수학으로 학위를 받았다. 또한 보어는 9개월동안 크리스찬센교수에 의해 금속전자 이론을 연구하였다. 이에 보어는 석사논문을 더 높은 철학 박사에게 설명하여 학위를 취득하게 된다. 보어는 다양한 문제들을 조사하고 자세한 모형들을 바탕으로 설명해 나아갔다. 이에 금속전자는 이상기체처럼 움직인다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으며 로렌츠 모델의 확장판인 보어모형을 만들어 내게 된다. 또한 금속전자 속 홀 효과와 같은 당시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을 보어의 이론으로 설명을 해 나아갔다.

 

보어모델

보어는 칼스버그 연구재단에서 지원을 받아 영국으로 망명하여 원자와 분자구조에 대한 이론적인 연구를 진행해 왔다. 또한 캠브릿지의 캐번디시 연구소에서 톰슨을 만났다. 이들은 전자기학에 관하여 많은 이야기를 했으며 음극선에 대한 연구를 하였다. 하지만 이 내용들은 톰슨에게 커다란 느낌을 주지는 못하였다. 또한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많은 물리학자들과 교류하며 보어의 물리학시야는 점점 넓어져만 갔다. 

 

보어는 행성의 궤도운동, 태양계의 운동들을 바탕으로 현재 보어모델을 완성시켰다. 궤도를 제외한 다른 곳에서는 전자가 발견될 수 없으며, 이는 양자역학의 밑바탕이 되었다. 또한 이를 정상상태라고 하며 불안정상태는 있을 수 없으며 궤도가 아닌 다른 곳에서는 전자가 발견될 수 있는 확률이 없다는 이론을 내었다. 

20세기의 원자모델에 영향을 미친 사람으로는 톰슨, 보어, 러더퍼드, 하이젠베르크, 슈뢰딩거 등이 있다.